2008년 05월 14일
루다와 문과 악마: 세계를 넘어서까지 '존재'를 원했던 오토시페므

* 이 글에는 책 속의 설정이나 줄거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이 글을 먼저 읽게 된다면, 재미가 격감할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 이 글은 ‘루다와 문’ 시리즈 중 현재 출판되어 있는 3권을 바탕으로 하는 글입니다.
* 또, 이 글은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기 보다는 책의 인물들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꿈으로 이어진 두 세계
그를 넘나드는 소년 ‘루다’
그리고
한 세계에서 죽음으로써 다른 세계에서조차 존재를 잃어버린 루다의 선생님 유시우
친구 유시우를 되살리기 위하여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악마의 계약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유유위
자신의 세계에서 빛을 갈구하며 다른 세계로 건너온 악마, 오트시페므
'루다와 문과 악마’
홍성은 저, 넥스비전 미디어웍스, 2008.05
#0
루다와 문과 악마, 이번의 루다 시리즈 3권은 1,2권에 비해 많은 이야기들이 진행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인물들의 행동이나 이야기의 행보에 있어서도 호흡이 빨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책이였습니다.
그만큼 루다와 그 일행들도 에인란과 현실 세계에 있어서 그들 및 '존재'에 관한 규칙에 좀 더 익숙해지고 머리회전이 빨라졌달까요. 그래서 루다와 일행이 세계와 세계 사이를 넘나들어도, 책 중 유시우가 루다의 집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그들이 이해하고 행동하는 시간이 그만큼 단축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후반부에서도 에인란에 존재하는 데르드 로므와 케이스 디르프가 현실세계에서 누구인지도 밝혀짐으로써 루다와 그 일행들, 그리고 에인란의 마법사 닐렘 뒤로드와 그의 아군격이라 할 수 있는 앞서 말한 이들이 후에(4권이겠죠?) 어떻게 만나고 이야기의 종결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될 지가 사뭇 궁금해지는 이번 권이였습니다.
#1
이번에 화두로 내세울 인물(?)은 이번 권의 제목에서도 언급되는 '악마', 오트시페므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몹시 미워하다가도 - 생각해보면, 오트시페므, 네가 츠아프를 이용해 죽이고, 또 유유위를 이용하여 상처입힌 인물이 대체 몇이더냐! - 루다의 몸을 침범하다가 허무하게 끝나는 모습에는 오히려 측은함을 느끼게 되는 캐릭터였습니다. 오트시페므가 추구하는 것에 대해 이번 권을 읽으면서 조금은 동화되어갔다는 것이 그 원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은근히 애정을 갖게 만드는 캐릭터였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오트시페므는, 자신의 육체 - 즉, 다른사람에게 온전한 자기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로서의 수단 - 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의 허무한 마지막을 보면 그는 단지, 한바가지의 피웅덩이일 뿐입니다. 자신에 관한 진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의 오토시페므는 자신 내면의 세계에서 영원의 시간동안 닿지 못했던 빛을 갈구하면서 그 세계를 달려보지만, 그 빛은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조금도 커지지 않죠. 오트시페므는 내심 그 빛에 자기 자신을 비추면 자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겁니다.
그렇습니다. 오트시페므는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면서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악마라는 것을, 혈주술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및 인간형 존재 - 오크같은)과 계약을 맺어 그 사람의 몸을 빌어 주술을 이용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좀 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 사실을, 이 악마는 알아내기 위해 타인의 '존재'와 계약하며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행동을 합니다.
[그저 한 점의 빛 조각은 그 자리에 계속 존재할 뿐.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지지 않는 존재. 그것을 알면서도 오트시페므는, 악마는 달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대답해라, 인간! 나를 보고 있다면 대답해라, 인간!"
오트시페므는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대체 뭐냐!"
오트시페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름조차도 첫 번째로 소환한 자가 붙인 가명.
(중략)
오트시페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저 끝에서 빛이, 빛의 조각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빛에 자신을 비추면 자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루다와 문과 악마, 홍성은, 넥스비전 미디어웍스, 2008.05>
#2
오트시페므는 자신이 '존재'하는 모습을 비추어줄 것이라 기대하는 빛의 조각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자신의 힘을 빌어 강해지고자,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계약을 하고 그들을 이용합니다. 이번 3권에서는 츠아프의 링커, 유유위와 계약아닌 계약(완전한 계약은 아니였지요)을 하고서 니라 에스라크를 죽이려 했고, 그의 링커의 모친을 죽였으며, 그 후 루다와 일체화하기 위해 루다에게 접근을 하지요. 그리고 루다의 손을 통해 완전한 동일화를 시도하려 합니다.
그런데, 루다는 2권에서도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지만, 에인란과 현실세계 간의 '룰 브레이커'입니다. 한마디로사기캐릭이죠 에인란에서 넘어온 악마라고, 에인란에서의 계약자가 죽자 현실세계의 링커와 조우하게 되어 그와 또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된 조금은 특별한 악마라지만 루다의 특별한 능력에는 별 수 없었습니다. 즉, 오트시페므는 루다의 몸에는 완전하게 들어갔지만 그가 바라던 '완전한 동일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그 자신을 '존재'로서 인식시켜줄 수 있으리라 믿었던 빛의 조각과 조우하였고, 그 결과 처절하고도 허무한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트시페므는 아무것도 아니였습니다. 그는 빛으로 비추자,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실을 마주합니다. 진실은, 오트시페므는 단순한 피웅덩이였습니다. 악마의 세계 · 악마의 지옥에서 태어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어둠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며, 어디서,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르는 증오를 배설하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기에 다른 누군가와 '동일화'되어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그 빛은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한 빛일지 기대했던 그런 악마, 오트시페므.
[그는 그가 원하던 것을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원초적으로 원하던 것을 드디어, 지금에야 볼 수 있게 되었다.
링커? 동기화? 그것은 그저 도망칠 길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계속 바랐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진짜로 바랐던 것은…….
(중략)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야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기쁨만이 그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다.
"신이시여……!"
악마가 가장 입에 내서는 안 될 말마저, 그동안 계속해서 저주해왔던 단어를 찬양하며 입에 담았다. 이러한 빛을 내려주는 신이라면 얼마든지 찬양할 마음이 있었다. 아니, 이 빛을 주지 않았기에 그는 그동안 계속해서 신을 저주했다.
(중략)
얼마나 웃긴 일인가? 얼마나 웃을 만한 일인가? 그야 빛이 다가오지 않을 만도 하다. 빛이 다가올 리 없었다. 그동안 달리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자신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움직이고 있던 다리는 어둠 속의 환상이었다. 휘젓고 있던 팔도 보이지 않기에 가졌던 꿈이었다. 목소리는 환청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빛이 주변에 가득 찼다.
저주스러운 빛이 모든 것을 알게 했다.
이럴수가.]
<루다와 문과 악마, 홍성은, 넥스비전 미디어웍스, 2008.05>
#3
오트시페므가 자신의 존재에 관한 진실을 마주할 때, 이 시리즈 중 가장 비참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초반부에 드래곤 니라 에스라크가 죽을 때에도, 또 트레드 나르가 죽을 때에도 어두운 기분은 들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두 가지의 경우는 소설, 혹은 드라마의 비극을 그저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오트시페므가 진실을 마주하고 초라하게 소멸(?)할 때에는 뭔가 한 구석에서 동(혹은 통,通)하는 것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오트시페므는 루다와 문과 드래곤-인공요정-악마, 현재까지 나온 시리즈에 걸쳐 가장 고독한 캐릭터로 꼽을 수 있습니다. 니라 에스라크나 유시우(트레드 나르)는 적어도 곁에 누군가가 그들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아껴주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루다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또 그 자신이 그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성장합니다. 나중에 악마로부터 해방되는 유유위도 존재력을 잃어가긴 마찬가지이지만, 그 곁에는 같은 처지이면서 매우 소중한 친구인 유시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인공요정(또는 트리엔트 레이디)인 이오르트에게도 에테노이람이라는 - 비록 이제는 인간이 아닌 인형이 되어버렸지만 - 영혼의 형태로나마 그녀를 아껴주고 지켜주는 존재가 곁에 있습니다.
그러나 악마 오트시페므의 곁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 그는 누군가와 계약을 하여 몸을 빌리지 않는 한 다른 존재에게 인식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굳이 분류하자면 의식)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형체)에 대해 인식하지도 못합니다. 그저 그는 피웅덩이로, 의식을 갖고 있다고, 그 의식 속에서 자신은 팔다리가 있다/달리고 있다/말을 하고 있다, 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트시페므의 진실은 자기 자신을 부정당하는 일이였습니다. 내면에서도 끝없이 외로웠고, 그 때문에 증오를 키워나갔고, 외롭지 않기 위해 타인에게 달라붙으며 지배하는. 또, 타인에게 제대로 인식되기를 기대하며 빛을 갈구하는 악마는 타인으로부터의 인식되기는 커녕 자신을 부정당했습니다.
#4
'루다와 문과 악마'의 오트시페므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자신을 바라봅시다. 현실을 바라봅니다. 타인으로부터 인식되는 자신은 타인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형성됩니다. 내가 나로써 인식하는 실존하는 존재와, 타인이 나를 인식함으로써 의미를 부여받는 존재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이 생각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로서 뒷받침 할 때 오트시페므가 의미하는 캐릭터성을, 그가 노력하던 목표와 그 이유가 우리 또한 현실 세계에서 끝없이 고민하며 갈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시는 김춘수의 '꽃'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 김춘수, 현대문학, 1952>
* * *
앞으로 마지막 권이 남아있는 ‘루다와 문’시리즈를 기대합니다.
뱀발) 오트시페므, 발음이 꽤나 곤혹스러운(귀찮은?) 악마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책 중간에 나오는 오트시페므의 영어 스펠링을 뒤집어 읽어보세요. 익숙한 이름?고유명사?가 나타납니다. 아레스실버님의 네이밍 센스가 보여요~ :D
# by | 2008/05/14 02:30 | Writings | 트랙백 | 덧글(0)



